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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의 새로운 표정, 그 가변성과 가능성


한국화의 부진을 우려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이 문제는 만성적이고 고질화되다시피 하였다. 전통이라는 권위와 현대라는 가치 사이에서의 혼돈과 방황은 급기야 한국화의 존립 자체를 회의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태동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며, 그것이 전적으로 일단의 청년 작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한국화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면 앞으로 한국화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진 셈이 될 것이다.
청년작가들의 특징은 전통의 굴레에 속박 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사고와 분방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새로운 사회 환경 속에서 생장한 이들은 한국인이라는 태생적인 조건에 더하여 서구적 조형 감각을 익혔으며, 무한한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로 무장된 집단이다. 그럼으로 이들의 작업은 전통의 그것처럼 권위적이지도 않으며, 특정한 가치나 내용으로 그 범주로 규정할 수 있는 정형화된 것도 아니다. 전통 제일주의의 보수적 입장에서 본다면 낯설고 가벼우며 심지어 괴이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문화란 것이 새로운 기운을 부단히 수혈 받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변화하는 가운데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유기체 같은 것이라 한다면,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변화 양태에 대하여 보다 너그럽고 애정 있는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성취를 여하히 수용하여 이를 한국화의 내일로 안착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일 것이다. 그만큼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기운은 소중한 것인 동시에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임태규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청년 작가들의 특징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경우라 할 것이다. 그의 작업은 분명 전통적인 심미관이나 감상 체계로는 수용되기 어려운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 상황을 통해 배태되어진 새로운 형식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전혀 새로운 것이거나 파괴적인 실험만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필묵이라는 전통적 재료를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표출되는 조형 체계 역시 수용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전통과의 연계성이 확보된 것이기에 그의 작업은 새롭지만 낯설지 않고, 자유롭지만 방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경쾌하고 감각적인 필선들은 그의 작업에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내용일 것이다. 그의 필선들은 모필이 아닌 연필이나 날카롭고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빠르게 그어나간 흔적들이다. 이러한 선들은 일정한 속도감을 동반한 움직이는 선들이다. 흐르듯 난무하는 선들은 어지럽게 화면을 구획하지만 일정한 리듬과 질서에 의하여 정해진 바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속도감을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하여 작가가 차용한 조형적 장치는 바로 습기를 머금은 종이위에 진한 먹을 칠하고 종이를 덧대어 먹이 체 마르기 전에 빠르게 목적하는 바의 형상들을 그려 나아가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 과정에서의 다양한 요소들은 고스란히 화면에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손의 움직임이나 먹의 건조 과정, 심지어는 행위의 흔적들까지도 조형의 한 요소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시간성이라는 조건에 반응하는 작가의 호흡을 반영하는 것이다.
임태규의 선은 요철이나 기복이 없이 가늘고 섬세한 선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형상을 표출해 낸다. 그럼으로 마치 흔들리고 움직이는 듯한 리듬감이 생겨난다. 이는 도구가 그렇고 순간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작업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서화동원(書畵同源)은 전통적 운필관의 가장 근간이 되는 원칙이다. 그러나 작가의 선묘는 이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오히려 전통적 운필관에서 금기시하는 마르고 빠르며 건조한 필선들을 선호한다. 서툴고 둔탁하며 어지러운 듯 하지만 그 내면에는 다분히 감각적이고 재치 있는 묘취를 내재하고 있다. 사실 전통적인 운필 방식은 어쩌면 이미 완성되어진 표현 방식인지도 모른다. 만약 중봉원필(中鋒圓筆)이라는 전통적 가치 기준만을 고수한다면 새로운 선의 표정이나 표현력은 기대하기 난망한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선묘 운용은 바로 필선에 대한 일종의 재해석이며, 재발견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의미 있는 요소이자 중요한 가치라 할 것이다.
작가가 다루는 인물들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다. 그는 선뜻 화면 속에 끌어 들이기 망설여지는 순간적인 내용들을 거침없이 포착하고 표현해 낸다. 부분적인 변형과 왜곡을 통하여 설정된 상황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도발적이기도 하고 또 해학적 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독특한 것이다. 과거의 인물 표현이 정적인 것에서 점차 현실 속에서 채집되어진 동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면, 작가의 인물은 또 다른 시점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가볍고 빠르며 얽매이지 않는 청년 문화의 특징을 반영하듯이 이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분방하다. 굳이 윤곽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채 흔들리듯이 움직이며 집적되는 선들의 조합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물 표현은 마치 연속 동작을 암시하듯이 유동적이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듯 한 어지러운 화면 속에서 흔들리는 선과 형태들 사이로 전해지는 독특한 감각은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이는 다른 이의 그것과 닮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작가를 비롯한 일단의 청년작가들의 작업들이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경향들은 모두 신선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이들의 작업들을 통하여 내일의 한국화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이 만약 순간적인 재치나 감각의 발휘 정도에 머무르게 된다면 이들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작가의 경우 역시 이러한 우려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빠르고 재치 있는 선묘는 분명 선에 대한 독특한 해석력이 돋보이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가볍거나 부유하는 감각으로 흘러버릴 염려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표현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순간적인 재치와 같은 기능적인 요소들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보다 깊이 있는 심미의 표출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료와 기법은 내용을 담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일단 효과적인 도구적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여겨진다. 문제는 어떠한 내용을 여하히 채울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작업은 가변적인 진행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변성이 바로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케 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김상철 / 월간미술세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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